Poppy day

10월무렵부터 영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빨간 종이꽃 브로치를 달고 다니기 시작한다.

작년에는 그게 뭔지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그저 우리나라 사랑의 열매 같은 것이려니 생각하고 말았는데 올해 문득 궁금해져서 인터넷 검색에 돌입해 그 의미를 알아냈다.
요약하자면 영국에서는 1차 세계 대전 종전일인 11월 11일을 순국선열을 기리는 현충일로 삼고 이들에 대한 애도의 상징인 양귀비꽃(Poppy) 브로치를 다는 거라는데, 왜 양귀비꽃이 그러한 상징이 되었는지에 대해선 인터넷에 정보가 차고 넘치므로 나는 생략함ㅎ
아무튼 이 때문에 현충일이 리멤브런스 데이Remembrance Day라는 이름보단 포피 데이Poppy Day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우는 듯 하다.



안그래도 최근들어 포피 브로치를 파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는데 포피 데이가 다가오니 육,해,공군이 군복을 입고 직접 브로치를 파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길에서 마주치는 영국인들의 절반 가량은 이 브로치를 달고 다니는 것 같다.
그런 풍경을 카메라로 한 번 담아보려 했는데...














아놔... 제대로 찍은 게 한 장도 없어. 몰카를 소심하게 걸어가면서 마구잡이로 눌러댔더니 채집 실패ㅋㅋ 아무튼 파란색 동글뱅이 그려놓은 부분이 포피 브로치다.

그런데 관련 정보를 찾아 읽다보니 요 포피 브로치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영국인들도 꽤 있는 모양이다. 진짜 영국인들만이 주로 이 브로치를 달기 때문에 이민자들이 많은 영국에서 위화감 내지는 또 하나의 차별을 조성한다거나, 전체주의를 조장해 아프가니스탄 파병 같은 불필요한 희생을 지지하게끔 하려는 것이라며.
1차 세계 대전이 엄청난 희생자 수를 낸 것으로 악명이 높기도 하고, 물론 그 전장에서 아까운 생을 마감하신 분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나,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1인으로서 생각해보건데 우리 조상님 중 1차 대전 때 참전 용사로 스러지신 열사가 계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포피 브로치 판매 수익금이 불우이웃돕기도 아닌 영국 군대 지원금으로 쓰인다는데 그 상황에서 내가 그 브로치를 사서 달고 다니는 건 좀 부자연스럽긴 하다. 그러한 이유로 이 브로치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뼛속까지 진짜 영국인인 사람들인 거고.
하지만 분명 자국민들 중에선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호국영령들에 애도와 감사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추모하고 싶은 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인데, 희생을 기리는 의미에서 포피를 단다면 굳이 반대할 것이 뭐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건 마치 우리나라에서 다문화 가족이 많아짐에 따라 그들이 느낄 위화감을 배려하여 현충일에 국기 게양하는 것을 삼가자고 하는 듯한 느낌이란 말이지. 아무튼 다민족이 섞여사는 나라 아니랄까봐 영국인들은 가끔 우리나라에서라면 상상조차 못할 걸 가지고 고민을 하더라.
포피가 1차 대전 당시 전쟁 참전  및 지원을 선동하는 상징으로도 쓰였다는 걸 감안했을 때 평화주의 입장에서 이를 반대하는 것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애국을 표방하는 대부분의 상징들이 어느 정도는 전체주의 성격을 띌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것 또한 나의 생각이다. 다만 포피 판매 수익금이 군대 지원금보다는 전쟁 중 부상을 입은 군인 또는 전사자의 유족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쓰였으면 더 의미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정리하자면, 내가 이 포피를 달고 다닐 건 아니지만서도 올해 포피 데이에는 특별히 이 브로치의 의의를 찾아 보고 역사 공부도 살짝이나마 해봤다는 점에서 나름 뜻 깊었던(?) 시간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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