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ingsgate Fish Market





런던은 섬나라의 수도임에도, 그리고 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해산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곳에도 서울의 가락동/노량진 수산 시장 같은 곳이 존재하니... 그 곳이 바로 빌링스게이트 마켓Billingsgate Market이다. 그래도 가락시장 규모에 견줄 바는 못되는 데다 생물은 취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우리나라 수산시장에서처럼 어항에서 여전히 아가미를 뻐끔거리고 있는 생고기들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 따윈 일찌감치 접어야 하지만 시중 마트가보다는 싼 가격에 비교적 신선한 수산물 득템을 할 수 있다.

빌링스게이트 마켓은 새벽~이른 아침에만 여는 시장인데 운좋게도 우리 동네 지하철 노선인 쥬빌리 라인Jubilee line이 이 시장이 있는 카나리 워프Canary Wharf까지 한 번에 간다. 그래서 이 노선이 통과하는 또 다른 동네에 사는 J언니를 따라 전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땐 계획없이 갔던 거라 얼마 사오진 않았었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방사능 걱정 때문에 굴을 맘껏 못 먹을 거라는 이야기를 최근 무슈K와 하다가 그렇다면 돌아가기 전 영국에서 굴을 원없이 먹어두자 하여 빌링스게이트 마켓으로 다시 한 번 출동하게 되었다. 참고로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 근해에서 잡히는 굴들은 모두 껍질째로만 판다. 오이스터 미트Oyster Meat, 그러니까 굴 속살만 파는 건 얼린 것들 뿐인데 어떻게 된 게 그런 건 죄다 한국산을 수입한 거라는 거ㅡㅡ 어쨌든 이 날을 위해 우린 지난 프랑스 여행 중 굴까는 칼까지 사왔음ㅎㅎ (영국에도 팔겠지만 환율 생각하면 프랑스가 더 쌀 것 같아서ㅋ)



새벽 6시 경 도착한 카나리 워프. 이 쪽 출구로 나와야 시장과 더 가깝다. 라고 아는 체하며 말하지만 사실 우린 반대쪽 출구로 나가는 바람에 여기까지 빙 둘러 걸어와야 했음.



카나리워프역에서 템즈Thames강 쪽으로 걸어와서 강을 따라 조금 걸어가다보면 비릿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고 곧 저 아래로 빌링스게이트 마켓이 내려다보인다.



시장 정문.


전에 J언니와 왔을 때는 매우 한산했는데 오늘은 이렇게나 북적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 때는 평일이었고 오늘은 주말인 차이인 듯.



주목적은 굴이지만 이 새벽에 여기까지 왔는데 굴만 사긴 좀 아까워서 시장을 탐색하다 득템한 첫 번째 수산물, 랑구스틴Langoustine. 바르셀로나Barcelona  보케리아Boqueria 시장에서도 먹었고 아이슬란드 회픈Höfn에서도 먹었던 그 맛난 랑구스틴! 1kg에 15파운드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 저 상자 하나가 1kg이었는데 23마리 정도 들어있었다.



그 다음으로 구입한 건 훈제연어. 사실 1kg짜리 한팩에 10파운드 하는 게 무게 당 가격이 더 쌌지만 대신 슬라이스가 되어있지 않은 거라 집에 회칼도 없고 먹기 불편할 것 같아서 걍 슬라이스 돼있는 500g짜리 3팩을 20파운드 주고 구입했다. 그래도 마트 훈제연어보단 싸다.
여담이지만 옛날엔 연어가 넘 비싸서 연어가 들어간 음식엔 포쉬Posh라는 단어가 붙었단다. 예를 들면 연어 샐러드는 포쉬 샐러드. 근데 솔직히 연어값이 옛날보단 싸졌을지 몰라도 다른 음식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싼 음식 아닌가? 내겐 아직까지도 포쉬한 그대. 마트에서 살 때마다 큰맘 먹어야 된다는ㅋ



굴 사는 사진 찍는 건 깜빡했지만 어쨌든 저 손수레에 실린 게 다 굴이다. 25개들이 4박스 샀으니 총 100개. 원래 1박스에 12파운드인 걸 깎아서 10파운드 50펜스 줬다. 우리한테 굴 판 아저씨가 식당에서 쓸 거냐고 물어봄ㅋㅋㅋ



시장을 나서며 기념사진ㅎ


원래 강에도 갈매기가 사는 건지 아님 바다에서부터 여기까지 온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생선냄새가 나는 곳엔 꼭 따라다니는 갈매기들. 빌링스게이트 마켓도 예외는 아님.


각종 금융회사 빌딩들이 가득한 신도시 느낌의 카나리워프 한 켠에 수산시장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아이러니해서 파노라마 한 번 찍어봤다. 어두울 때 찍어놓으니 화질은 좋지 않지만.
 
 


집에 돌아와서부터는 본격 굴까기. 굴칼이 생각보다 쉽게 들어가지 않아 망치까지 동원;; 굴에서 물이 많이 나와 처음엔 신문지며 수건을 잔뜩 깔고 했는데 그마저 역부족이었다. 물이 넘쳐서 바닥까지 흐르고 난리... 그래서 나중엔 바가지 안에 굴을 넣고 깠더니 훨씬 깔끔했음. 왜 첨부터 그 생각을 못했지ㅡㅡ



무슈K가 껍질을 까면 난 굴 속살을 떼어내는 역할 분담 공정.


뽀얀 속살.


4박스 다 끝내고 얻은 결과물은 굴 속살 약간에 굴 껍질 한 더미... 아니 네 더미ㅡㅡ 껍질양은 어마무시하고, 굴 까는데 들인 시간과 노력도 엄청난데 속살은 고작 1.5kg 정도 나왔음. 굴 속살만 모아서 얼려 파는 한국산 수입굴이 훨씬 싸다........... 우리 뭐 한거지. 방사능을 피했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하나;;
 


게다가 직접 까면 껍질 파편이 넘 많이 섞여 들어가서 그거 다 걸러내느라 소금물로 씻고 걸러내기만 다섯 번은 한 것 같다.  이런 막노동 과정을 거치는데도 한국에선 굴 속살을 그렇게 싸게 팔다니 우리나라 인건비가 그렇게 싼가?ㅡㅡ^



굴 다 까서 지퍼락에 나눠 담아 냉동실에 얼리고 뒷정리하고 났더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빌링스게이트 획득 수산물 중 우리 식탁에 첫 번째로 오른 타자는 랑구스틴. 우리의 일용한 양식이 되어준 랑구스틴들에게 감사와 명복을,,,



무슈K는 랑구스틴만으론 양이 안차서 라면도 한 봉다리 끓여먹음. 먹고남은 랑구스틴 껍질로 육수를 냈더니 국물이 뽀얗다. 이 육수로 끓인 라면맛은 그러나 그냥 라면맛이었다고.......ㅋㅋㅋ



이 날 저녁에는 굴파티ㅎ


매생이 굴국.


그리고 굴전ㅎ


담날엔 굴국밥.


한식이 푸드 데코가 어려운 것인가 내가 푸드 데코에 소질이 없는 것인가ㅡㅡ; 맛만 있음 됐지 뭐...

근데 토요일부터 이렇게 신나게 굴파티 하고 월요일 아침부터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는 최악의 컨디션을 맞이하였다. 덕분에 매주 월요일 출석 중인 이탈리안 쿠커리 스쿨 가서도 진심 토할 거 같고 오한까지 들어서 1시간 가량 버티다 결국 조퇴하고 돌아와야 했음ㅠㅠ 첨엔 몸살인 건지 체한 건지 긴가민가 했는데 인터넷 자가진단 결과 노로 바이러스 감염이 강력히 의심됨. 이 바이러스가 겨울철 굴에서 잘 발생한다는 것도 그렇고, 24시간~48시간의 잠복기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구토나 오한 등의 증세도 그렇고, 1~3일 앓고 나면 대부분 자연치유 된다는 것까지. 오 딱 나야!ㅋㅋㅋㅋㅋㅋㅋ 85도 이상에서 1분 이상 가열하면 감염성이 없어진다는 노로 바이러스 특성 상 굴국은 팍팍 끓여서 괜찮았을 것 같은데 아마 반숙으로 구웠던 굴전이 문제였던 것 같다. 방사능을 피하려다 식중독을 얻었긔ㅡㅡ



앓는 동안 무슈K가 끓여준 죽 사진으로 마무리ㅋ 라면을 제외하고 무슈K가 처음으로 손수 요리해준 음식. 감동이어서 사진으로 찍어두었다ㅋㅋ


파란만장 빌링스게이트 마켓 체험기는 기승전죽으로 이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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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와.. 지금봐도,, 저 굴까기는 정말 막노가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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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연 잘 한 짓이었을까?ㅡ.ㅡ 어묵용 새우랑 생선사러 한 번 더 가고 싶긴 하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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